[베를린©Medu.News] 최근 6개월 이상 정치권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지역의사” 선발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발표였다. 당초, “의대 정원 확대”라는 키워드로 시작된 논의는 지난 80년대 이후로 꾸준히 “의사 숫자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끝없이 이어져온 가운데, 2000년대 초반 “의약 분업”이나 “한의학 건강보험 수가” 등의 논란과 진통을 거친 “의료 체계에 관한 구조적 변화”는 언제나처럼 “정부와 시민단체, 그리고 의사협회” 등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의료 파업”을 그 마지막 단계로 이어가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OECD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인구 1천명당 의사 숫자”를 두고 설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과연 “의사 협회의 밥그릇 지키기” 정도로만 치부할 일인지는 조금 더 세세한 연구와 관찰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한국 뿐만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미국, 캐나다, 영국 등 다수의 선진국들이 “의료 체계”에 대해 많은 고찰을 해야했던 “포스트 코로나19″의 시기에 접어든 오늘날, 주요 국가들의 현행 의료 체계와 의대 정원, 그리고 의사 수급의 방법 등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의대 정원 확대, 누가 왜 반대할까?
흔히 알려진 바로는 “의대생 증가 ➝ 의사 증가 ➝ 개원의 증가 ➝ 개인 병원 및 중소형 병의원 경쟁 심화 ➝ 의사 개인 소득 및 근무 환경 악화 ➝ 의료 서비스 품질 저하 및 국민 보건의료 악화” 등의 일정한 논리가 적용되며, 이 가운데 “의사 개인 소득 및 근무 환경 악화”에 대한 부분은 “반대 이유”에서 종종 드러나지 않거나 축소되기도 한다. 오히려, 의사나 의대생 쪽의 논리에 따르면 “의대생 증가 ➝ 실력 미달 의대생 합격 ➝ 실력 미달 의사 출현 및 증가 ➝ 의료 서비스 품질 저하 및 국민 보건의료 악화”의 흐름을 나타낸다. 이를 종합해보면, 의사나 의대생 관련 단체의 주장은 “자격 미달인 의대생/의사”가 가장 큰 반대 이유라는 것이고, 일부 시민들의 생각은 “밥그릇 싸움”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생각에 대해 정부와 여당 측에서도 “공공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고 개선하고자”하는 이유를 내세워 맞서온 모습이다. 두 가지 입장이 모두 완전히 옳거나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의대생/의사 관련 단체가 주장하는 “자격 (혹은 실력) 미달”에 관한 부분에는 명백한 논리적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의대생 증원”이 몇 천명 단위로 확대된다면 모르겠으나, 불과 몇 백명 수준의 정원을 확대하는 것은 “여전히 50만명 이상의 대입 수험생이 있는 현실”에 비추어, 단순히 “고교 성적이나 수능 성적만으로 의대생으로서 실력 미달을 우려할 정도”로 낮은 순위의 수험생들을 의대에 합격시키는 내용이 아니다. 특히, “전국 단위 수험생 성적”을 고려한다면, (증원에 따라 추가로 선발되는) 몇 백명의 학생들이 기존 의대 입시의 커트라인과 비교하여 눈에 띌 만한 “실력 (혹은 고교/수능 성적) 차이”가 있는 집단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사로 키워내는 것이 의과대학의 기능”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설령 입학 당시의 실력 (혹은 고교/수능 성적) 차이가 있던 수험생이라 하더라도 “의대생으로서 의과대학에서 정상적인 교육과정 이수와 의과대학 내에서의 평가를 거쳐, 정상적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시를 통해 면허를 취득한다면” 이미 “실력이 낮은 의사 또는 부적격 의사”에 대한 우려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 오히려, 기존의 논리대로라면 “누구나 의대 합격만 하면, 훌륭한 의사로 졸업하는” 현실이라는 얘기이며, 결과적으로 “의과대학이란 입학생 전원을 의사로 배출하는 통과의례” 정도로 그 기능과 의미를 축소하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의사 숫자와 공공의료, 무슨 관계일까?
의사 수를 논하기 전에, 먼저 “공공의료”라는 표현을 보다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국내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어떠한 형태로라도 “국가로부터 의료비 지원”은 받고 있으나, 100% 무상 의료라던지 일반적으로 찾게되는 진료 기관이 “국가나 정부 기관에 소속되는” 형태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국민 대다수가 “세금”과 같은 개념으로 “건강보험료 납입”을 통해 일반 진료기관을 포함한 “국내 대다수의 의료 기관에 정해진 비율에 따라 재정의 일부를 지원하는” 형태로써 우리의 “공공의료”는 구성되어있다. 때문에, 유럽이나 일부 아시아 국가와 같이 “보건소 개념의 진료 기관에서 대부분의 환자를 담당하는” 개념의 “공공의료”와는 그 의미나 역할에 차이가 큰 편이다. 흔히, 유럽 의사를 두고 “공무원 의사”로 비유하는 경우를 보게되는데, 일부 사회주의 국가 또는 실제 “공중 보건의”와 같이 그 직역이 “공무원”으로서 국가에 직접 고용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에 “1차 진료의사에게 국가가 재정을 지원하는” 형태로써, 이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한국의 경우에 “자유업”에 가까운 개념에서 “담당 환자의 수나 진료 시간 등에 대한 규제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유럽에서 시행중인 “권역 내 환자 등록 및 할당제”라던지 “일일 진료 환자 수 제한”과 같은 제도적인 환경으로 인해 한국과 유럽 “1차 진료의”에 대한 인식이나 “소득 활동 내역”은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공공의료”에 대한 “의사 증원과 그 이전 단계인 의대 정원 확대”의 문제를 두고, 국내 의대생 및 의사 관련 단체에서 내세우는 “공공의료 서비스 품질 저하와 국민 보건의료 악화”에 대한 우려가 일견 설득력을 얻는 근거는 “기존 운영중인 공공 병원에 대한 재정 지원의 확대를 통해 먼저 직접적인 공공의료 환경의 개선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며, 이 주장도 매우 논리적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이 1년 이상 지속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코로나 전담 간호사와 의료인에 대한 처우 개선”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는 것은, 중장기에 걸친 제도 개선에 앞서서 “당장 의료진에 대한 현실 처우 개선”이 훨씬 시급한 문제이자 중요한 개선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비단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국내 의료 환경에 있어서 “감염병으로 인한 사회・경제적인 피해 확산”은 환자 개인을 치료하는 1차 기능을 뛰어 넘어, 환자가 아닌 주변 사회 구성원에 대한 보호의 기능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공공의료”라는 개념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저개발 영역”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대 정원 확대・공공 의대 설립”은 중장기적인 관점에 있어서 “더 많은 공공 의료인의 공급을 통한 국민 보건의료의 양적인 개선”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현재 한국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데 소요하는 시간”은 매우 짧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시장 논리”에 의해 1・2・3차 진료 기관이 운영되는 제도적 환경으로 인해, 최소 30-40분 이상을 들여 환자 1명을 진료하는 유럽 의료 환경에 비해 “오진의 위험도”는 훨씬 높을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일반적인 “의료 서비스 품질”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좋은 것으로 평가받기도 하며, 실제로도 유럽에 비해 “오진으로 인한 의료 사고”의 빈도가 심각하게 높은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이에 관한 정확한 통계 자료나 연구 논문 등을 통해 뒷받침해야 할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살면서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해 심각한 불편을 겪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현실 경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대 정원 확대 및 의사 증원”을 통해 “공공의료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공공병원 및 공공의료인력 확보”라는 목적에 더해 부가적으로 “일반 의사 증원”을 통해 “의사 1명당 환자 수를 감소시키고, 이를 통해 환자 1인당 진료 시간의 증가를 유도할 수 있는” 기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후자의 경우대로 “선순환”하려면, 그에 맞는 수준의 “진료 수가 인상”과 같은 보조적인 제도 개선이 뒷받침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복잡한 논의”가 건전하게 시작하고 진행되며 신중하게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 뿐만 아니라, 의대생 및 의사 관련 단체와 함께 “의료 소비자”인 일반 시민 단체도 모두 “책임있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어지는 기사를 통해 아래의 내용을 추가로 살펴봅니다.)